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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 빛낸 인물 이계수 시인에 대하여

영혼샘 2009. 10. 28. 02:10

가난한 삶을 노래한 이계수 시인
의령예술의 꽃을 피우며 젊은 생을 마감
 
 
 예술적 삶을 살다가 일찍 생을 마감한 시인이 있다. 이계수 시인이다. 의령문인협회에서 활동하고 사단법인 의령예술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진정한 예술의 길을 걸었다. 그러다 2001년 12월 11일 나이 마흔을 앞두고 갑자기 이승을 떠나고 말았다.

 이계수 시인은 깡마른 체구에 핸섬한 얼굴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맑고 예리했다. 시인은 시인으로서의 눈과 마음을 지녔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행복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들에게 넉넉함을 전해주고 부족한 에너지를 채워주었다.

 시인은 경남 의령군 궁류면 지동마을에서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4대 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인의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며 목수일을 했다.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기에는 토지가 부족하여 목수일을 했다. 하지만 시인이 중학교에 다닐 무렵 아버지는 더 이상 홀로남은 4대 독자인 아들을 위해 책임지지 않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때부터 시인은 홀로서기를 해야했다. 어머니와 누나가 가족의 전부였다. 더 이상 생업의 증가는 기대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때부터 뼈저린 가난의 길을 걸어야했다. 그렇게 홀로서기로 세상을 살아오면서 어릴 때 시골에서 꿈을 꾸어왔던 시의 길을 서서히 걸어왔다.

 시인은 진주에서 살면서 문학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하여 문학수업을 이어갔다.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학우들과 문학동아리를 만들었다. '띠앗문학회'다. 직접 동아리를 결성한 시인은 초대 회장을 맡았고 회원들이 함께 글을 짓고 모아서 『띠앗문학』 이라는 책을 만들어 냈다. 그렇게 해서 2대 회장까지 맡았고 자신의 문학의 역량을 키워왔다. 그러다 1997년 4월 17일 의령문인협회의 전신인 의령문학회가 창립할 때 고향인 의령에서 문학의 텃밭을 일구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인 1998년 뜻있는 몇몇 예술가들이 모여 문닫은 학교를 활용한 예술촌 조성을 위한 준비에 합류하여 자신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그리하여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에 있는 평촌초등학교에서 전시장 조성작업을 완료하고 1999년 5월 21일 사단법인 의령예술촌 개촌과 함께 초대사무국장을 맡아서 의령에 예술의 씨앗을 뿌리게 된다.

 그렇게 사단법인 의령예술촌을 운영하면서 점점 예술의 텃밭을 경작하게 된다. 점점 비어 가는 시골 들녘 한 귀퉁이. 문닫은 학교 한 켠으로부터 일구기 시작한 예술의 텃밭에 서서히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맑은 하늘 아래로 파릇하게 날아오르는 그 싹이 점점 자라서 언론과 주민과 관람객과 행정과 그리고 예술인들로부터 각광을 받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명실공히 문닫은 학교를 활용한 최고의 성공작품으로 평가받기에 이른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예술에 대한 사랑과 지역사랑이 한데 어우러져 시인의 역할을 높이 올리게 되고 많은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예술적 가치를 발휘하게 된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된 2000년 여름 시인은 계간 문예지 『문예한국』 여름호에 시 '젊음의 하늘 아래'와 '흑백사진' 등의 작품을 발표하여 신인상에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하게 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자신의 삶의 모습을 표현하는 시를 발표하기도 하고 『의령문학』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는 등 가난한 자신의 삶을 담은 문학적 세계를 갖추어 나가게 된다.

 가난과 가난으로 점철되어지는 시인의 삶은 예술을 통해 그 가치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왔다. 그래서 항상 부자가 되는 꿈을 품고 가난한 시인의 모습으로 존재의 의미를 지켜왔다. 그렇게 살아온 서른 아홉의 삶은 마흔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2001년 12월 9일 일요일 저녁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을 잃은 채 병원 중환자실에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하루전 의령예술촌에서는 처음으로 예술과 예술인이 함께 만나서 예술의 꽃을 피우는 '예술인의 밤'과 더불어 『의령문학』제 5호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행사가 끝나고 뒷풀이 자리에서 의령사랑과 예술사랑을 실천하며 진정한 예술인으로 존재할 것을 그렇게 힘주어 다짐을 했는데 그 약속을 하루도 채 지키지도 못하고 자신의 젊은 생을 정리하고 있었다. 이틀이 지나고 자신의 젊은 인생을 다 정리했는지 12월 11일 차가운 바람이 스쳐 지나가는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내려오는 정오 무렵 그렇게 눈을 감고 멀고 긴 강을 거슬러 가고 말았다.

 이계수 시인의 서른 아홉의 겨울은 또 다른 세상을 찾아서 먼 길을 따나가는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시인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슬픔 속에 12월 13일 의령예술촌에서 영결식을 갖고 그렇게 이별을 고했다. 그 날은 찬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불던지 흐르던 눈물도 말라버리고 입술이 떨려 울음조차 사치스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나고 시인이 타계한 1주년을 추모하는 행사가 의령예술촌에서 열렸다. 시인이 『의령문학』 5호에 마지막으로 남긴 시 '이파리 연가'를 시비로 만들어 제막식을 가졌고 그동안 남겨놓은 작품을 담은 유고시집 『이파리 연가』 출판하여 기념회도 가졌다. 또한 시인이 자신의 생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에 자신이 살아온 흔적들을 정리해서 '고 이계수 시인 기념관'이라는 이름으로 기념관도 만들었다. 그리고 시인과 함께 활동했던 의령문학회 회원들이 '추모시화전'을 열기도 했다.

 이계수 시인은 그렇게 짧은 생을 마감한 채 다시 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가고 말았지만 시인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영원히 젊고 신선한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리고 시인의 가난했던 생과 예술적 가치는 사단법인 의령예술촌에 소박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서서 그가 꿈꾸어 왔던 가을 낙엽이 되어 하얀 겨울을 준비하고 있다.


<의령문학> 7호 2003년 11월 20일